
기원전 480년 늦여름,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이 이끄는 그리스군은 산과 말리스만 사이의 좁은 길목인 테르모필레에서 크세르크세스의 군대를 막으려 했다. 이틀에 걸친 페르시아군의 공격이 실패한 뒤, 히다르네스 휘하의 부대가 산길로 돌아 나왔다. 사흘째 되는 날 레오니다스와 남아 있던 이들은 전사했고, 중부 그리스로 가는 길이 열렸다.
게임에서: 테르모필레 레벨은 이 전투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게임은 스파르타인과 테스피아이인이 한 사람도 남김없이 전사했다고 말한다. 헤로도토스는 전투에서 떨어져 있어 살아남은 스파르타인 두 명, 아리스토데모스와 판티테스를 언급한다.

고갯길을 지키다
고대의 전승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크세르크세스는 그리스군이 물러나기를 기대하며 트라키스에서 4일을 기다렸다. 그런 다음 메디아인과 키시아인을 보냈고, 그 뒤로 히다르네스가 이끄는 불사부대를 투입했다. 좁은 지형에서는 그들의 수가 별 소용이 없었으며, 헤로도토스는 스파르타인이 거짓 후퇴로 그들을 끌어들인 뒤 돌아서서 공격했다고 말한다. 둘째 날의 전투도 같은 양상으로 흘러갔다.
Herodotus 7.201-212


병력 규모, 동기, 그리고 테베인
분쟁 중헤로도토스는 크세르크세스에게 보병 170만 명이 있었고, 함대와 수행원까지 합치면 500만 명이 넘었다고 전한다. 역사가들은 이 수치를 터무니없이 부풀려진 것으로 보며, 현대의 추정치는 그 일부에 불과하다. 고대 저술가들 사이에서도 그리스군의 규모를 두고 의견이 갈린다. 레오니다스가 헤로도토스의 말대로 명예와 신탁 때문에 남았는지, 아니면 퇴각을 엄호하려고 남았는지를 두고 역사가들이 논쟁한다. 플루타르코스는 테베인들이 마지못해 인질로 남았을 뿐이라는 헤로도토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Herodotus 7.60, 7.186, 7.202, 7.220-222; Diodorus 11.4; Plutarch, On the Malice of Herodotus

남은 기록, 그리고 페르시아의 침묵
당대 기록1939년 스피리돈 마리나토스는 고갯길에 있는 낮은 언덕 콜로노스를 발굴하여 청동과 철로 된 화살촉을 다수 발견했다. 대부분의 학자는 이 언덕을 마지막 항전이 벌어진 곳으로 본다. 그 뒤 강의 침니가 쌓여 해안선은 옛 고갯길에서 멀리 물러났다. 이 전투를 언급한 페르시아 문서는 없으므로, 페르시아 측 사정은 그리스 저술가들을 통해서만 알려져 있다.
Excavations of S. Marinatos, 1939; P. Briant, From Cyrus to Alexander, 2002

후대의 속담과 이야기
후대의 전설플루타르코스의 스파르타 격언집에는 무기를 내놓으라는 요구에 레오니다스가 “와서 가져가라”고 답했다고 나온다. 디오도로스는 대왕의 천막을 노린 그리스군의 야간 기습을 전하는데, 헤로도토스는 이를 언급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들은 수백 년 뒤에 기록되었고 스파르타의 용기를 기리도록 다듬어졌다. 실제로 오간 말과 행동의 기록이 아니라 전승으로 읽는 편이 좋다.
Plutarch, Sayings of the Spartans; Diodorus 11.9-10
출처
- Herodotus 7.175-239
- Diodorus 11.4-11
- Plutarch, On the Malice of Herodotus
- J. F. Lazenby, The Defence of Greece 490-479 BC, 1993
- P. Cartledge, Thermopylae: The Battle That Changed the World, 2006
- P. Briant, From Cyrus to Alexander,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