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자호레스네트는 사이스 출신의 이집트 관리로, 마지막 토착 왕들 아래에서 함대를 지휘했고 이후 캄비세스와 다리우스를 섬겼다. 비문이 새겨진 그의 조각상은 페르시아의 정복을 가장 상세히 전하는 이집트 측 기록이다. 이 기록은 이방의 왕이 어떻게 이집트 왕권의 틀 안에 자리 잡을 수 있었는지, 그리고 지역 엘리트들이 새 지배자 아래에서 어떻게 신전과 지위를 지켜냈는지를 보여 준다.
게임에서: 게임 속 연대기 주석은 그가 캄비세스와 다리우스 두 왕의 이집트식 왕명을 지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조각상은 캄비세스에 대해서만 이를 주장하며, 다리우스와 관련해서는 사이스의 '생명의 집'을 복원한 일을 기록합니다.


캄비세스의 시의이자 즉위명을 지어 준 이
당대 기록캄비세스는 그를 수석 의원이자 왕의 측근으로 삼았다. 우자호레스네트는 자신이 캄비세스의 이집트식 즉위명 메수티라, 곧 '라의 자손'을 지었다고 말한다. 그는 왕을 설득해 네이트 신전에 자리 잡은 이방인들을 내쫓고, 신전의 수입과 축제를 되살리고, 왕이 몸소 사이스에 와서 여신을 경배하게 했다.
Statue of Udjahorresnet; M. Lichtheim, Ancient Egyptian Literature III, 1980

다리우스를 위한 생명의 집 복원
당대 기록비문에 따르면 왕이 그에게 이집트로 돌아가라고 명했을 때 그는 엘람에서 다리우스 곁에 있었다. 그의 임무는 서기들이 문헌을 필사하고 의사들이 수련하던 신전 기관, 곧 '생명의 집'을 재건하는 것이었다. 그는 다리우스가 치유술의 가치를 알았기에 그곳에 인원을 배치하고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어 주었다고 말한다.
Statue of Udjahorresnet

부역자인가, 백성의 수호자인가
분쟁 중헤로도토스는 캄비세스를 아피스 황소를 죽이고 이집트 신들을 모욕한 광기 어린 왕으로 그린다. 그러나 이 조각상은 그가 네이트 여신을 공경하는 모습을 보여 주며, 한 아피스 석비에는 그의 치세에 황소 한 마리가 왕실의 예를 갖춰 매장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역사가들은 우자호레스네트가 제 잇속만 챙긴 부역자였는지, 아니면 자기 도시를 지킨 애국자였는지를 두고 여전히 논쟁한다. 그가 묘사한 큰 혼란이 기원전 525년의 정복을 가리키는지, 기원전 522년의 소요를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린다.
Herodotus 3.27-29; G. Posener, La première domination perse en Égypte, 1936; A. B. Lloyd, JEA 68, 1982

조각상과 무덤
당대 기록그의 입상은 작은 사당을 받쳐 들고 있으며 온몸에 그의 자전적 기록이 새겨져 있다. 이 상은 아마도 로마 시대에 이탈리아로 옮겨졌으며 지금은 바티칸 박물관에 있다. 멤피스 인근 아부시르에서 작업하던 체코 고고학자들이 그의 것으로 확인된 대형 수직갱 무덤을 발굴해 1999년에 발표했다.
L. Bareš, The Shaft Tomb of Udjahorresnet at Abusir, 1999
출처
- Statue of Udjahorresnet, Vatican Museums
- A. B. Lloyd, The Inscription of Udjahorresnet: A Collaborator's Testament, Journal of Egyptian Archaeology 68, 1982
- G. Posener, La première domination perse en Égypte, 1936
- M. Lichtheim, Ancient Egyptian Literature III, 1980
- L. Bareš, The Shaft Tomb of Udjahorresnet at Abusir, 1999
- Herodotus 3.2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