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피로스
헤로도토스가 전하는 바빌론 재탈환 이야기에 나오는 페르시아 귀족, 기원전 521년경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 귀족 조피로스가 스스로 몸을 훼손하고 탈주한 척하여 바빌론을 다리우스에게 넘겨주었다고 전한다. 이 이야기는 그리스 저술가들만이 전한다. 다리우스의 베히스툰 비문은 바빌로니아의 반란들을 서술하면서도 그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는다.
게임에서: 조퓌로스는 니딘투벨과 아라카의 반란을 다룬 사건 항목에서만 언급될 뿐, 고유한 게임 메커니즘은 없다.

헤로도토스가 전하는 포위전 이야기
고대의 전승헤로도토스에 따르면 바빌론은 다리우스에게 반기를 들고 성벽 뒤에서 스무 달 동안 버텼다. 그는 조피로스를 가짜 바르디야에 맞선 공모자 중 한 명인 메가비조스의 아들이라고 밝힌다. 그의 이야기에서 조피로스는 스스로 코와 귀를 자르고 머리카락을 깎은 채, 다리우스의 잔혹함에 희생된 사람으로 꾸며 바빌로니아인에게 갔다.
Herodotus 3.150-160

지휘와 열린 성문
고대의 전승헤로도토스에 따르면 바빌로니아인들은 조피로스를 믿고 그에게 병력을 내주었다. 그는 처음에는 소규모 병력으로, 다음에는 더 큰 병력으로 손쉬운 승리를 거두게 했고, 이후의 공격 때 성문이 페르시아인에게 열렸다. 헤로도토스는 다리우스가 그에게 바빌론의 수입을 평생 주었으며, 바빌론 여럿을 얻느니 조피로스가 다치지 않은 편이 낫겠다고 선언했다고 전한다.
Herodotus 3.150-160

베히스툰 비문이 말하는 것
당대 기록다리우스 자신의 비문에는 바빌론의 반란이 두 차례 기록되어 있다. 첫 번째는 네부카드네자르라는 이름을 취한 니딘투벨이 일으킨 것으로, 다리우스가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에서 그의 군대를 격파하면서 끝났다. 두 번째는 아라카가 일으킨 것으로, 페르시아인 빈다파르나가 진압했으며 아라카는 바빌론에서 말뚝에 꿰여 처형되었다. 이 비문에는 조피로스의 이름이 나오지 않으며, 20개월에 걸친 포위전도 나오지 않는다.
DB §16-20, §49-50

사료들이 어떻게 맞물리는가
분쟁 중역사가들은 대체로 헤로도토스가 서술한 단 한 번의 긴 포위전을, 베히스툰 비문에 기록된 두 차례의 반란을 압축했거나 혼동한 판본으로 본다. 바빌로니아의 상업 문서에도 이 두 차례의 반란이 반영되어 있다. 조퓌로스라는 인물이 바빌론 탈환에 참여했는지는 불확실하며, 신체 훼손 이야기를 문학적 창작으로 보는 학자도 많다. 비문은 이 이야기를 전혀 뒷받침하지 않는다.
P. Briant, From Cyrus to Alexander, 2002

계략에 얽힌 이야기
후대의 전설스스로 몸을 훼손한 탈주병 이야기는 충성스러운 사내가 눈에 보이는 고통을 통해 적의 신뢰를 얻는다는 익숙한 유형의 이야기에 속한다. 폴리아이노스를 비롯한 후대 그리스 저술가들도 그의 책략집에서 이런 계략을 되풀이해 전했다. 이 이야기는 또한 페르시아 귀족을 왕에게 충성하는 본보기로 그려 낸다.
Polyaenus, Stratagems
출처
- Herodotus 3.150-160
- DB §16-20, §49-50
- P. Briant, From Cyrus to Alexander, 2002
- Polyaenus, Stratage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