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캄비세스의 죽음
이집트에서 귀환하던 행군 중 맞은 대왕의 죽음, 기원전 522년
기원전 522년, 키루스의 아들이자 이집트의 정복자인 캄비세스가 페르시아로 돌아오는 행군 도중에 죽었다. 바르디야라 자칭하는 대왕의 동생이 이미 제국 대부분에서 왕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캄비세스의 죽음으로 왕좌가 비었고, 몇 달 만에 다리우스와 페르시아 귀족 여섯 명이 새 통치자를 죽였으며, 이는 기원전 522-521년의 반란으로 이어졌다.
게임에서: 게임은 다리우스의 공식 설명을 따라 통치자를 바르디야를 사칭한 자라고 부른다. 그가 사칭자였는지 진짜 동생이었는지는 여전히 논쟁 중이며, 게임의 짧은 설명은 사인을 확정하지 않는다.

다리우스의 비문이 말하는 것
당대 기록베히스툰 비문에 따르면 캄비세스는 이집트로 떠나기 전에 동생 바르디야를 몰래 죽였다. 대왕이 자리를 비운 사이 마기 가우마타가 기원전 522년 3월에 페르시스에서 일어나 자신이 바르디야라고 주장했고, 7월에 왕위를 차지했다. 이어 다리우스는 캄비세스가 제 죽음을 맞았다고만 밝힌다. 이 표현에는 장소도, 원인도, 정확한 날짜도 나와 있지 않다.
DB §10-11

문서 속의 새로운 왕
당대 기록바빌로니아의 상업 문서는 기원전 522년 봄부터 바르디야의 치세로 연대가 적혀 있다. 이는 캄비세스가 아직 살아 있었을 무렵에 이미 바르디야가 바빌로니아에서 왕으로 받아들여졌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캄비세스의 죽음은 새 통치자가 이미 폭넓은 지지를 얻은 뒤인 기원전 522년 여름에 일어났을 가능성이 크다. 문서들은 캄비세스가 어떻게, 어디서 죽었는지는 말해 주지 않는다.
A. Kuhrt, The Persian Empire, 2007

상처에 관한 헤로도토스와 크테시아스의 기록
고대의 전승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캄비세스는 시리아의 엑바타나라는 곳에 있었는데, 그때 전령이 새 왕의 즉위를 알렸다. 그가 말에 뛰어오르는 순간 칼이 칼집에서 빠져 허벅지를 찔렀다. 상처는 악화되었고, 그는 7년 5개월간 재위한 뒤 세상을 떠났다. 크테시아스는 다르게 전한다. 대왕은 나무를 깎다가 칼로 허벅지를 벤 지 11일 만에 바빌론에서 죽었다는 것이다.
Herodotus 3.62-66; Ctesias, Persica (Photius's summary)

사고, 자살, 혹은 살인
분쟁 중역사가들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합의하지 못한다. 어떤 이는 다리우스의 표현을 자연사나 사고사로, 어떤 이는 자살로 읽으며, 캄비세스가 훗날 다리우스를 지지한 자들에게 살해되었다고 의심하는 이도 있다. 이 문제는 왕좌에 앉은 사람이 정말 바르디야였느냐는 더 큰 논쟁과 얽혀 있다. 만일 그가 바르디야였다면, 다리우스의 이야기는 모두 자신의 권력 찬탈을 정당화하는 데 쓰인 셈이다.
P. Briant, From Cyrus to Alexander, 2002

아피스의 상처
후대의 전설헤로도토스는 이 죽음을 신의 징벌로 그린다. 그에 따르면 칼은 캄비세스가 멤피스에서 아피스 황소를 찌른 바로 그 허벅지 자리를 찔렀다. 그는 또 부토의 신탁이 대왕에게 엑바타나에서 죽으리라고 경고했으며, 대왕은 이를 메디아의 도시로 받아들였다고 덧붙인다. 캄비세스 치하에서 아피스가 왕실의 예우를 받으며 매장되었다는 이집트의 기록은 황소를 찔렀다는 이야기에 의문을 던진다.
Herodotus 3.29, 3.64
출처
- DB §10-11
- Herodotus 3.29, 3.62-66
- Ctesias, Persica (Photius's summary)
- P. Briant, From Cyrus to Alexander, 2002
- A. Kuhrt, The Persian Empire,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