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우마타 살해
다리우스와 여섯 귀족이 메디아의 시카야우바티에서 재위 중인 왕을 죽이다. 기원전 522년
기원전 522년 9월 29일, 히스타스페스의 아들 다리우스와 페르시아 귀족 여섯 명이 당시 키루스의 아들 바르디야로 제국을 다스리던 자를 죽였다. 다리우스는 피살자가 마기이자 사칭자인 가우마타였다고 주장했다. 이 살해로 다리우스는 왕이 되었으나 이듬해 내내 반란이 이어졌다. 죽은 왕이 정말로 진짜 바르디야였는지를 두고 역사가들은 지금도 논쟁한다.
게임에서: 게임은 이를 기원전 522년의 사건으로 제시하며, 죽은 왕을 가리키는 다리우스의 호칭을 쓰되 일부 역사가들은 그가 진짜 바르디야였다고 본다는 점도 밝힌다. 연대와 조력자 6명이라는 수는 다리우스 본인의 비문과 일치한다.



헤로도토스가 전하는 내용
고대의 전승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캄비세스는 동생 스메르디스를 몰래 살해하게 했고, 이후 이름이 같은 한 마기가 그의 형제 파티제이테스의 도움으로 왕위를 차지했다. 이 설명에서는 일곱 사람이 메디아의 요새가 아니라 수사의 궁전으로 억지로 들어갔고, 고브리아스가 그 마기를 붙들고 있는 동안 다리우스가 어두운 방에서 그를 찔렀다. 헤로도토스는 훗날 페르시아인이 마기 학살을 기리는 축제를 지냈으며 그리스인이 이를 마고포니아라 불렀다고 덧붙인다.
Herodotus 3.30, 3.61-79

사칭자인가, 키루스의 친아들인가
분쟁 중바빌로니아의 계약 문서는 기원전 522년 여름까지 바르지야의 치세로 연대가 적혀 있어, 많은 백성이 그를 받아들였음을 시사한다. 다리우스는 가우마타가 파괴한 예배 장소들을 재건하고, 그가 빼앗은 목초지와 가축 떼와 집안 일꾼들을 돌려주었다고 말한다. 한편 헤로도토스는 그 왕이 3년 동안 공물과 병역을 면제했다고 전한다. 많은 역사가는 다리우스가 진짜 바르디야를 죽이고 사칭자를 지어냈다고 의심하지만, 그의 설명을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다.
DB §14; Herodotus 3.67; P. Briant, From Cyrus to Alexander, 2002

귀 없는 마기
후대의 전설헤로도토스는 오타네스가 사칭자의 정체를 폭로한 경위를 전한다. 그의 딸 파이디메는 왕의 아내들 가운데 한 명이었는데, 왕이 잠든 사이 그의 머리를 더듬어 귀가 없음을 알아냈다. 키루스가 예전에 벌로 귀를 잘라 버렸기 때문이다. 헤로도토스는 또 7인이 해가 뜰 때 누구의 말이 먼저 우는지로 새 왕을 정했으며, 다리우스의 마부 오이바레스가 결과를 꾸며 냈다고 말한다. 두 이야기 모두 기록이라기보다 궁정 설화에 가깝다.
Herodotus 3.68-69, 3.84-87
출처
- Darius I, Behistun inscription (DB §10-14, §68-69)
- Herodotus 3.30, 3.61-88
- P. Briant, From Cyrus to Alexander, 2002
- A. Kuhrt, The Persian Empire: A Corpus of Sources from the Achaemenid Period, 2007
- R. Schmitt, The Bisitun Inscriptions of Darius the Great: Old Persian Text, 1991
- Ctesias, Persica (as summarised by Photi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