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렉사스페스
헤로도토스에 등장하는 같은 이름의 페르시아 귀족 두 명. 캄비세스와 크세르크세스 치세에 활동, 기원전 522~480년
헤로도토스는 프렉사스페스라는 이름을 두 사람에게 쓴다. 한 명은 캄비세스의 신임을 받던 하인으로, 바르디야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에 휘말렸다. 다른 한 명은 아스파티네스의 아들로, 기원전 480년 크세르크세스 함대의 제독 네 명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이 친족이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게임에서: 이 게임은 프렉사스페스를 연대기 항목과 사건 항목에서 언급하며, 제독 항목에서는 크세르크세스 함대의 제독 4명 중 한 사람으로 나온다. 그에게는 고유한 인물상도, 메커니즘도 없다.

캄비세스의 심복
고대의 전승헤로도토스는 캄비세스가 가장 신임한 인물 중 한 명이자 그의 전언을 전하던 프렉사스페스를 기록했다. 이 출처는 그리스 측 기록이며, 사건이 일어나고 한참 뒤에 쓰였다.
Herodotus 3.30

아들을 향한 화살
후대의 전설헤로도토스는 캄비세스가 광기에 사로잡혀 자신의 손이 흔들리지 않음을 보이려고 프렉사스페스의 아들을 활로 쏘았다고 전한다. 이 이야기는 왕의 잔혹함과 신하의 인내를 가르치는 교훈담으로 꾸며진 것이며, 페르시아 쪽 기록 가운데 이를 확인해 주는 것은 없다.
Herodotus 3.34-35


탑 위의 연설
후대의 전설헤로도토스에 따르면 공모자들은 프렉사스페스에게 새 왕이 참으로 키루스의 아들이라고 페르시아인에게 선포하게 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자신이 바르디야를 죽였다고 고백하고 탑에서 몸을 던졌다. 이 장면은 한 신하의 양심을 다룬 교훈담처럼 읽힌다.
Herodotus 3.74-75

크세르크세스 함대의 제독
고대의 전승헤로도토스는 아스파티네스의 아들 프렉사스페스를 기원전 480년 크세르크세스 함대의 페르시아인 제독 네 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는다. 그가 함께 거명하는 나머지 셋은 아리아비그네스, 아카이메네스, 메가바조스다. 낙셰 로스탐의 비문 DNd에는 아스파티네스라는 인물이 다리우스의 활과 전투 도끼를 든 시종으로 나오는데, 그렇다면 이 제독은 왕좌와 가까운 가문 출신이었을 수도 있다. 다만 둘 사이의 연관은 확실하지 않다. 헤로도토스가 제시한 함대 규모는 과장되었다는 것이 널리 받아들여진 견해다.
Herodotus 7.97
출처
- Herodotus 7.97
- Herodotus 3.30
- Herodotus 3.74-75
- DB §10
- DNc
- P. Briant, From Cyrus to Alexander,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