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보니두스
바빌론의 마지막 토착 왕. 기원전 556~539년에 재위했으며 키루스에게 폐위되었다.
나보니두스는 약 17년 동안 바빌론을 통치했으며, 기원전 539년 키루스가 이 도시를 차지하기 전의 마지막 토착 왕이었다. 키루스 치하에서 쓰인 문헌들은 그를 불경한 통치자로 묘사하는데,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에 대해 알려진 것 대부분이 이 묘사에서 비롯된다. 다리우스에 맞선 두 반란자가 자신이 그의 아들이라고 주장한 것은 그의 이름이 여전히 무게를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게임에서: 나보니두스에게는 고유한 레벨이나 메커니즘이 없다. 게임에서 그의 이름은 바빌론의 함락, 유수민의 귀환, 니딘투벨과 아라카의 반란을 다룬 사건 문서에서만 등장한다.

옛 왕가 바깥 출신의 왕
당대 기록나보니두스는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치세 이후 불안했던 시기에 쿠데타를 일으켜 기원전 556년에 왕위에 올랐다. 그는 네부카드네자르의 혈통이 아니었다. 하란에서 발견된 그의 어머니 아다구피의 비문을 비롯해 그의 치세에 새겨진 명문들은 그가 달의 신 신(Sin)을 깊이 섬겼음을 보여 준다.
Harran stele of Nabonidus; P. Briant, From Cyrus to Alexander, 2002

테이마에서 보낸 세월
분쟁 중《나보니두스 연대기》에 따르면 왕은 아라비아의 오아시스 테이마에서 수년을 보냈고, 그 기간 동안 바빌론에서는 새해 축제가 치러지지 않았다. 연대기는 그 이유를 밝히지 않는다. 역사가들은 대상 무역의 장악, 신 신에 대한 신앙, 바빌로니아 사제단과의 불화 등을 이유로 제시해 왔으며, 적대적인 문헌들은 또 다른 설명을 내놓는다.
Nabonidus Chronicle (ABC 7)

키루스의 정복
당대 기록《나보니두스 연대기》에 따르면 키루스의 군대는 기원전 539년 오피스에서 바빌로니아군을 격파하고 시파르를 점령했다. 이어 구티움 총독 우그바루가 10월 중순 전투 없이 바빌론에 들어갔고, 나보니두스는 사로잡혔다. 키루스 본인은 약 2주 뒤에 도시로 들어갔다.
Nabonidus Chronicle (ABC 7)

키루스의 기록 속 나보니두스
당대 기록키루스 원통은 나보니두스가 바빌론의 제의를 소홀히 하고 불경한 행위를 저질렀다고 비난한다. 또한 마르두크가 질서를 회복하도록 키루스를 선택했다고 말한다. 이는 승자의 기록이자 바빌로니아 신전 양식으로 쓰인 선전이며, 연대기는 왕에게 그만큼 적대적이지 않다.
Cyrus Cylinder

그리스 저술가와 후대 저술가들의 기록
고대의 전승헤로도토스는 바빌로니아 왕을 라비네토스라 부르며, 키루스가 그를 전투에서 물리쳤다고 말하고, 유프라테스강의 물길을 돌려 도시를 점령한 일을 서술한다. 요세푸스가 전하는 베로소스는 나보니두스가 항복했으며 키루스가 그를 카르마니아에 정착시켰다고 말한다. 두 설명은 세부 사항에서 서로 맞지 않고, 어느 쪽도 연대기와 꼭 들어맞지 않는다.
Herodotus 1.188-191; Josephus, Against Apion 1

그의 이름을 내세운 반란자들
당대 기록다리우스의 베히스툰 비문에 따르면 니딘투벨은 기원전 522년에 네부카드네자르라는 이름을 취하고 나보니두스의 아들을 자처했다. 아르메니아인 아라카도 기원전 521년에 같은 주장을 했다. 다리우스는 두 사람 모두 바빌론에서 격파되어 죽임을 당했다고 말한다.
DB §16; DB §49-50

벨사살과 다니엘서
후대의 전설다니엘서는 벨사살을 바빌론의 마지막 왕으로 그리며, 벽에 쓰인 글씨로 중단된 잔치를 이야기한다. 쐐기문자 문헌에 따르면 벨사살은 나보니두스의 아들이었으며, 왕이 자리를 비운 동안 아버지를 대신해 통치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왕이 아니었고, 잔치 이야기는 한참 뒤에 쓰인 교훈담이다.
Book of Daniel 5
출처
- Nabonidus Chronicle (ABC 7)
- Cyrus Cylinder
- DB §16 and §49-50
- Herodotus 1.188-191
- Josephus, Against Apion 1
- P. Briant, From Cyrus to Alexander,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