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리우스의 공물 책정
다리우스 1세가 제국을 공물 구역으로 나눈 일. 기원전 518년경
다리우스 1세는 재위 초기에 복속된 민족들에게 해마다 내야 할 공물을 정하고, 이들을 헤로도토스가 사트라피라 부르는 구역으로 묶었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이는 키루스와 캄비세스 치세에 바치던 선물을 대신한 것이며, 그가 적은 구역과 액수의 목록은 페르시아 공물에 대한 고대의 가장 상세한 설명이다. 이 수입은 궁정과 군대, 그리고 대왕의 건축 사업을 충당하는 데 쓰였다.
게임에서: 게임은 기원전 518년경의 칙령을 제시하며, 은으로 정해진 납부액과 반란으로 중단된 이오니아의 400탈란트를 보여 준다. 헤로도토스는 연대를 밝히지 않았고, 일부 민족은 금이나 현물로 냈으며, 중단은 기록이 아니라 추정이다.


반란 이후 이오니아의 몫과 측량
고대의 전승헤로도토스는 이오니아인, 아이올리스인, 카리아인, 리키아인과 그 이웃들을 첫 번째 속주에 넣고, 이들이 해마다 은 400탈란트를 바쳐야 했다고 적는다. 그에 따르면 이오니아 반란이 진압된 뒤 아르타프레네스는 도시들의 영토를 파라상 단위로 측량하고 이를 기준으로 공물을 매겼다. 새 액수는 이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 헤로도토스는 반란 중에 납부가 끊겼다고 분명히 말하지는 않지만, 반란을 일으킨 도시들이 공물을 바쳤을 가능성은 낮다.
Herodotus 3.90; Herodotus 6.42

페르시아 측 기록이 보여 주는 것
당대 기록베히스툰 비문에서 다리우스는 자신에게 복종한 땅들을 열거하며 그들이 공물을 바쳤다고 말한다. 이후의 비문들과 페르세폴리스 아파다나에 새겨진 사절단 부조는 속국 사람들이 대왕에게 물품을 바치는 모습을 보여 주며, 페르세폴리스 점토판에는 왕실 창고의 물품과 카르샤와 셰켈 단위로 무게를 단 은이 기록되어 있다. 이 자료들 어디에도 헤로도토스가 말한 스무 개의 구역이나 그의 액수는 나오지 않는다.
DB §7; Persepolis Apadana reliefs; Persepolis Fortification and Treasury tablets

실제 명부인가, 그리스식 배열인가
분쟁 중역사가들은 헤로도토스의 목록이 실제 페르시아 등록부에 근거한 것인지, 아니면 페르시아의 나라 목록에도, 실제로 운영된 사트라피에도 들어맞지 않는 그리스인의 재구성인지를 두고 의견이 갈린다. 바빌로니아 문서는 키루스와 캄비세스 치세에도 세금이 거두어졌음을 보여 주며, 이는 그가 말한 앞선 선물의 시대와 어긋난다. 기원전 518년경이라는 연대는 현대의 추정일 뿐이며, 일부 학자는 이 제도가 한 번의 칙령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갖추어졌다고 본다.
P. Briant, From Cyrus to Alexander, 2002; A. Kuhrt, The Persian Empire, 2007

장사꾼 다리우스
후대의 전설헤로도토스는 키루스는 아버지, 캄비세스는 주인, 다리우스는 장사꾼이었다는 페르시아인들의 말을 전한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키루스는 너그러웠고 캄비세스는 가혹했으며, 다리우스는 모든 일에서 이익을 챙겼다. 이 말은 세 왕에 대한 도덕적 평가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어떤 페르시아 사료에서도 그 출처를 찾을 수 없다.
Herodotus 3.89
출처
- Herodotus 3.89-97
- Herodotus 6.42
- DB §7
- P. Briant, From Cyrus to Alexander, 2002
- A. Kuhrt, The Persian Empire: A Corpus of Sources from the Achaemenid Period,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