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원전 513년경, 다리우스가 이스트로스(도나우강) 북쪽에서 스키타이인과 싸우는 동안 이오니아와 헬레스폰토스에서 온 그리스 분견대가 그의 귀로인 배다리를 지켰다. 헤로도토스는 그들의 참주들이 다리를 끊어 대왕을 고립시킬지 논의했고, 밀레토스의 히스티아이오스가 다리를 지키라고 설득했다고 전한다. 이 이야기는 이후 그리스인이 이오니아인의 충성과, 훗날 이오니아 반란을 일으킨 자들을 바라보는 시각에 영향을 미쳤다.
게임에서: 게임은 헤로도토스를 따른다. 코에스는 다리를 보존하라고 조언하고, 밀티아데스는 다리를 끊으라고 촉구하며, 히스티아이오스가 다리를 지켜 낸다. 이 일화 전체는 헤로도토스를 통해서만 알려져 있으며, 밀티아데스의 역할은 훗날 아테네에서 생긴 이야기일 수 있다.

코에스가 대왕에게 조언하다
고대의 전승헤로도토스에 따르면 군대가 이스트로스를 건너자 다리우스는 이오니아인에게 다리를 부수고 자신과 함께 행군하라고 명했다. 미틸레네인 부대의 장군 코에스는 스키타이인을 찾지 못하거나 그들을 싸움에 끌어내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다리를 놓은 이들이 지키게 하며 돌아올 길로 남겨 두자고 조언했고, 다리우스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는 끈에 매듭을 60개 짓고, 이오니아인에게 하루에 하나씩 풀되 매듭이 다 풀릴 때까지 자신이 돌아오지 않으면 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일렀다.
Herodotus 4.97-98

참주들의 표결
고대의 전승스키타이인은 다리에 두 번 찾아왔고, 두 번째는 60일이 지난 뒤였으며 이오니아인에게 다리를 끊고 떠나라고 재촉했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케르소네소스의 참주였던 아테네의 밀티아데스는 동의하려 했다. 밀레토스의 히스티아이오스는 각 참주가 페르시아의 힘으로 자기 도시를 다스리고 있으며, 그 힘이 없으면 민중 통치 아래 무너질 것이라고 답했다. 다른 이들이 그의 편에 섰고, 스키타이 쪽 기슭에 가장 가까운 구간만 끊은 뒤 나머지도 부수겠다고 스키타이인에게 말했다.
Herodotus 4.133-139

대왕의 귀환과 보상
고대의 전승다리우스는 밤에 강에 이르렀으나 북쪽 끝이 사라진 것을 보았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목소리가 아주 큰 이집트인 한 명이 히스티아이오스를 불렀고, 히스티아이오스가 함선들을 되돌려 다리를 복구했다. 훗날 사르디스에서 대왕은 두 사람에게 상을 내렸다. 코에스는 미틸레네의 참주로 삼아 달라고 청했고, 히스티아이오스는 트라키아의 미르키노스를 받았다. 헤로도토스는 스키타이인의 평결도 덧붙인다. 이오니아인은 자유인 중에서는 가장 비겁하고, 노예 중에서는 가장 충직하다는 것이다.
Herodotus 4.140-142; 5.11

밀티아데스가 정말 그것을 제안했을까
분쟁 중역사가들은 이 대목을 의심한다. 밀티아데스는 훗날 케르소네소스에서 행한 참주 통치 때문에 아테네에서 재판을 받았으나 무죄로 풀려났다. 그가 제안했다는 이야기는 그를 페르시아의 오랜 적으로 보이게 하려고 생겨났다고 보는 이가 많다. 또 다른 이들은 그가 기원전 493년경까지 페르시아의 속국이던 케르소네소스에 머물렀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한다. 다만 그 시기에 대한 헤로도토스의 서술은 혼란스럽다. 원정 시기 또한 불확실하며, 기원전 513년경이 통상적인 추정이다.
Herodotus 6.40; 6.104; P. Briant, From Cyrus to Alexander, 2002

페르시아 기록의 침묵
당대 기록다리나 논의를 서술한 페르시아 문헌은 없다. 낙셰 로스탐에 있는 다리우스의 무덤 비문은 그의 속민 가운데 바다 건너의 사카인을 꼽는데, 많은 학자들이 이들을 이 유럽 원정과 연결하지만 다른 곳에 두는 학자도 있다. 페르시아의 기록은 바다 건너 땅에 대한 권리 주장을 보여 줄 뿐, 다리에서 그리스인들이 내린 선택은 그리스 쪽 전승으로만 알려져 있다.
DNa
출처
- Herodotus 4.97-98; 4.133-142
- Herodotus 5.11; 6.40; 6.104
- DNa
- P. Briant, From Cyrus to Alexander, 2002
- M. Waters, Ancient Persia, 2014